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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2

김용옥의 강좌에서 건진 두 가지

별 생각 없이 교육방송을 틀어보았다. 김용옥 선생의 논술 강의가 있었다. 특유의 입담으로 텔레비젼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끝날 때까지 보게 되었는데, 두 가지 배운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우리가 외래어를 쓸 때에 한글과 외국 문자를 그냥 섞어서 쓰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Beethoven의 교향곡'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교향곡' 또는 '베토벤(Beethoven)의 교향곡'이라고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보고서 쓸 때 내가 정말 싫어하는 단어가 '추진(案)'이라고 쓰거나 '감독下에 진행中에 있음.' 과 같이 불필요하게 한자를 한글과 섞어서 표기하는 것이다. 한자어 대신에 우리말 단어를 찾아 쓰자는 것이 아니라 한자어를 표기할 때에 굳이 한글에 한자어를 섞어쓰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표적인 마크업 언어인 에이치티엠엘(HTML)에도 언어가 바뀌면 반드시 언어를 표시하도록 되어있다. 예를 들면,

<p lang="ko">
<span lang="en">remote control</span>을 줄여서
영어에서는 <span lang="en">remote</span>라고 하지만
리모컨이라고 줄여 쓰는 경우는 없다.</p>

이와 같이 언어 독해의 모드(mode)가 바뀌면 원칙적으로 한 단어이든, 문장이든, 단락이든, 아니면 통째로 파일 전체이든 해당 언어를 표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나 검색 엔진과 같은 기계가 문서를 정확히 분류하고 해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한국어와 영어는 완전히 문자가 달라서 보통 국내의 스크린 리더에서 알파벳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읽지 못하는 경우는 없지만, 표기 문자가 많이 겹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섞어 쓰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한자를 썼을 때에도 그것이 한국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일본어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중국어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컴퓨터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은 되도록이면 한글로 글을 쓸 때에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글이 아닌 다른 문자(한자나 영어)를 섞어서 쓰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보기 싫기도 하고, 한자나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읽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도 글을 쓸 때에 다른 문자 표기를 섞어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원칙을 배웠다.

또 하나는 되도록 순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순화주의자들의 주장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순 우리말이라는 것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널리 쓰이는 한자어가 있는데 억지로 말이 안 되는 우리말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것에 대해서도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예로 든 것이, 먹거리라는 단어였다. 원래 우리 말 어법대로 하면 동사가 명사를 꾸미려면 관형어 형태로 먹을 거리가 되어야 하는데 어법에도 맞지 않게 먹거리라는 단어를 억지로 만들어 이것이 음식이라는 한자어보다 더 좋은 우리말인 것으로 퍼뜨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새로운 우리말 단어를 알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반해 꼭 쓰고싶어지다가도 실제 더 많이 쓰이는 한자어나 외래어가 일상화되어서 사실 생활에서 활용을 못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겠다.

2006-08-15

영어 듣기와 주의 집중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EBS 라디오를 틀어놓고 귀가 트이는 영어, 조오제의 토익 리스닝, 이보영의 포켓 잉글리시 등을 듣는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것들은 모두 면도하면서, 샤워하면서, 옷 입으면서 흘려듣는 것들이므로 사실 건지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 많은 영어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말들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데 영어는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복이 중요하다고 해서 주말에 재방송을 들어봐도 (그 때에도 딴 짓하면서 건성으로 듣는 편이라) 역시 한국말 해설은 두 번 반복하니 완전히 외우겠는데 외국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오늘 해외에서 온 교육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였다. 식사하는 도중에 CNN 뉴스가 나왔다. 나는 아주 주의집중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밥먹던 것을 잊고 들으면 겨우 몇 퍼센트 건질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한 눈으로 힐끗힐끗 보고, 밥도 맛있게 먹으면서, 때로는 나와 잡담도 하면서 뉴스를 본 것 같던데 뉴스에서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예전에 회사에서 그 회사 사장님이 영어에 한이 맺힌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이도 아주 많지만 아직도 영어 테이프를 잠잘 때에 틀어놓고 잔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뭔가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듣는 영어, 밤에 잠잘 때 틀어놓는 영어, 낮에 길거리에서 딴생각 잔뜩 하면서 듣는 영어,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영어에 질리게 만들도록 항상 틀어놓는 영어 TV 방송, 이런 것들이 영어 듣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아침에 나오는 토익 방송 중에 간혹가다 문제는 건성으로 듣다가 답은 또렷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답은 알쏭달쏭한데 알고 보면 정말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왜 들리지 않았을까? 그것은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주의 집중해서 영어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1언어에 비해 외국어를 이해하려면 훨씬 많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서 듣는 영어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특히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가 훨씬 지난 성인들에게 말이다. 심리학적으로 실험해봐야 할 재미있는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의 효과가 없거나 또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아직 주의를 주지 않고 자동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먼 외국어 듣기 영역에서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듣기 시작하면, 외국어는 일반 잡음, 배경 소리로 처리하는 기제가 점점 발달하지는 않을까?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대화를 하려면 (그것은 생존에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주의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운전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말을 시키거나 라디오를 틀어놓기만 해도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며, 온 힘을 운전대에 집중해 꽉 쥐다보면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나중에 손바닥이 얼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의를 다 쏟아서 한 가지 과제를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는 점점 더 적은 주의를 쏟더라도 자동화되어 그 과제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영어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주의를 쏟지 않고 그냥 틀어놓으면 잘 들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너무 순진한 희망 사항이 아닐까?

그래도 설마 부정적인 효과가 있겠어? 1%라도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내일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2006-08-14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저자 존 코터. 번역 한정곤. 출판사 김영사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존 코터 지음.

나는 어쩌면 회사원이 체질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수도 없이 의심해왔다. 특히나 학교 졸업하고 처음 회사 들어갈 때의 그 두려움과 낯설음, 그리고 부적응적 태도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내가 회사 생활을 한 지도 참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기업 경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이나 리더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별 근거없이 잘 꾸며진 틀에 자기 주장을 맞추어 늘어놓는 것들이어서 그런 책들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이라는 책을 보게 된 이유는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아직까지 조직 경험이 한참 부족한 내가 변화 관리를 강의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 되는 영어로. 만약 그 내용이 e-learning에 관한 것이거나, 웹 접근성에 관한 것이거나, 우리 회사의 이러닝 시스템 사용법에 관한 것이라면 일주일을 하든 이주일을 하든 별 상관 없는데, 변화 관리라는 영역은 완전히 초짜중에 초짜인데 갑자기 영어로 8시간을 떠들어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교육도 받고, 다시 영어로 된 e-learning 과정도 들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다시 한국어로 된 책을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참 쉽고 예제가 많이 있어서 쉽게 쉽게 넘어갔다.

물론 이 책을 읽고 경영 서적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기업에서 생겨난 혁신이라는 말이 요즈음은 공기관과 정부에서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모두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어제의 영광이 오늘, 내일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이건, 조직이건 빠르게 움직이는 열차 위에서 쉬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은 커녕 현상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회사에 들어와서 공부 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고 또 배우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또 하나, 어떤 일이든 단숨에 우연하게 운좋게 되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냥" 혼자 "샤샤삭" 해버리면 되지, 뭘 그리 복잡하게 사람들 만나서 의견 물어보고, 워크샵하고, 설문 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만나서 간담회도 하고, 또 아주 복잡한 변화 관리 계획을 세울까라고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새로운 정책이나 변화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매우 환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회의적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방관할 수도 있고, 주도적일 수도 있고, 끌려다닐 수도 있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수도 있고, 위험을 피하려 할 수도 있고, 바빠서 관심을 못 갖을 수도 있고,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교하고 단계적인 변화를 계획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책에 있는 변화 관리 8단계가 저자의 주장인지 아니면 그 전에 다른 문헌에서 주장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가 다 결코 쉽게 보고 지나쳐서는 안 될 소중한 단계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흔히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기업이 원하는 혁신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인생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우리들이 부닥치는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차근차근 관계된 사람을 참여시키면서, 또는 관계된 자원을 모아가며 목표를 향해 성실하고 집요하게 단계를 밟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2006-08-07

Trip to Jeju Island

I had an unforgettable trip to Jeju Island on August 2nd through August 4th with my family: Dad, mom, Doo-shik(younger brother), and Jung-shik (elder brother) and his wife, Minhee. We stayed at a beatiful house for two nights with the ocean view and visited various places including Halim botanical garden, Cheonjiyeon waterfall, U-do, Sanbang-san, and so on.


Dad wearing a straw hat in Halim Botanical Garden, Jeju | Singing Greg with the playing statues | Dooshik spreading out his arm in front of Jesus statue | Mom on the swing | Jungshik and his wife with the Gwanbang Mountain as the background | My family (except me) at the Miniature Theme Park. Dooshik, Jungshik, Minhee (Andrew's wife), Dad, and Mom from the left | Dooshik and Greg riding a horse

2006-08-01

밤의 적막

낮과 밤 중에 어떤 것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만큼 대답하기 어렵다. 요즘 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에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집이 두 곳이다. 하나는 마당과 화단과 우물이 있었던 산수2동 한옥집, 다른 하나는 마당은 넓지 않지만 무등산 밑에 있어서 산에 놀러가기 쉬웠던 산수3동 양옥집. 5분만 나가면 초등학교가 나온다. 그리고 한겨울 운동장에서 별을 관찰한다고 싸구려 망원경을 들고 나와 추위에 떨며 하늘을 쳐다봤다.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밤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살았던 방배동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조그마한 뒷산이 나오고, 굳이 산으로 가지 않더라도, 밤에 서늘한 바람에 날려 들어오는 풀냄새와 꽃냄새를 따라 걸을 수 있는 호젓한 산책길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리가 좀 아프면 그냥 길가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벤치에 앉아 그냥 어두운 산, 깊고 어두운 하늘을 바라본다.

오산으로 이사오고 나서 한 가지 확실하게 나빠진 것은 밤이 너무 밝아졌다는 것이다. 방에 불을 꺼도 주변에서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불빛이 너무 밝아 눈가리개를 하고 잔다. 나는 한낮의 밝은 햇빛을 좋아하는만큼, 한밤중에 진한 어두움도 좋아한다. 그 진한 어두움에 잠겼을 때에만 낮의 피곤함이 가시고, 시각적인 자극에 묻혀 들리지 않던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몸도 마음도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시각적인 현란함에서 잠시 벗어나 주위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나만의 장소를 찾았다. 물론 벌써 앞반사판이 깨지는 상처를 입은 자전거 덕분에...^^

2006-07-25

깜박이는 것들은 가라!

우리 나라 웹 페이지들에서만 발견되는 좋지 않은 특징을 몇 가지 들어보라면 뭐가 있을까? 나는 여기 저기서 난무하는 깜박임과 움직임, 잘 보이지도, 예쁘지도 않은 흐릿한 텍스트, 플래시 메뉴 정도를 들고 싶다. 이런 것들이 정부, 국가 기관, 비영리 기관, 일반 기업, 포털, 대학 등을 가리지 않고 총체적으로 악명높은 한국적인 웹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그 중에서 깜박임과 움직임의 문제는 W3C의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에서 중요도 1로 다룬 상당히 심각한 것인데, 국내에서는 접근성을 고려해 개편을 했다는 웹 페이지들도 깜박임과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만큼은 무한정의 관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왜 서구의 웹 페이지들이 깜박임이나 움직임을 쓰지 말라고 지침을 만들었을까? (깜박임을 제한하는 W3C 지침, 미국 재활법 508조 규정 (h)와 (k), HP의 지침, IBM의 지침, BBC 지침)



  • 1초에 약 2회에서 59회 사이의 깜박임에 노출되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1초에 약 20회 내외의 깜박임이다.

  • 움직이는 메뉴나 텍스트, 그림을 선택하는 것은 뇌병변 장애가 있거나, 마우스 사용이 서툰 초보 사용자, 노인, 키보드 사용자가 콘텐츠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제한된 시간 내에 사용자한테 무슨 동작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사용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제작자의 오만이다.

  • 텍스트나 그림이 움직이거나 깜박임을 유지하기 위해, 해당 영역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경우, 시각 장애인용 스크린 리더는 해당 영역만 반복적으로 읽어주면서 다른 영역으로 가지 못하는 현상이 생긴다.

  • 난독증이나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들, 글을 읽는 것이 서툰 외국인들은 빠르게 변하는 그림과 텍스트를 이해하기가 훨씬 어렵다.

  • 화면 확대기를 쓰는 사람들은 화면의 좁은 부분을 확대해서 봐야 하는데, 좁은 부분만 봐서는 깜박이거나 변해가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확대할 영역을 이동해가면서 본다고 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나면서 내용이 바뀌어버렸으므로 이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 첫 화면에 불필요한 플래시나 애니메이션을 넣음으로써 페이지 로딩 속도가 현저하게 늘어난다. 나는 펜티엄 3, 450Mhz와 PCI 방식의 16MB짜리 구형 S3 그래픽 카드, 그리고 리눅스(페도라 코어)와 오페라를 사용한다. 이 환경에서 첫 화면과 메뉴를 플래시로 도배한 국내 홈페이지들을 보거나 탐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와 자비심, 평정심이 필요하다.

  • 화면 여러 군데에서 깜박임이 나타나게 되면, 사용자는 어디에 주목하고 시선을 둬야 할 지 혼란스럽다. 메뉴부터 시작해서 공지사항, 링크, 광고 모든 것이 깜박이니 도대체 뭘 주목하라는 것인지...

  • 화면이 온통 움직이는 사이트들은 (실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사람들에게 덜 인상적이고 더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내용과는 별 상관도 없는데 메뉴를 치장하느라고 무겁고 느린 플래시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사이트들은 단 한 장의 강렬한 그래픽 이미지로 사이트 전체의 느낌과 메시지를 나타낸 사이트에 비해 인간에게나 기계에게나 처리해야 할 정보량은 많고, 그 사이트를 기억하게 만드는 특징점은 줄어들 수 있다.

  • 요즘에 잘 쓰이지 않지만 텍스트를 깜박이거나 움직이게 하는 <marquee>와 <blink>는 HTML 표준에 없는 것들이다. 모든 웹 표시장치들이 그것을 지원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깜박임이나 움직임은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 왜 첫 화면부터 사용자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지루하게 봐야 하는가? 깜박임과 움직임이 자주 쓰이는 곳들을 짚어보았다.



움직이는 뉴스
우리 나라 정부 사이트들은 국정 브리핑 자료나 뉴스를 나타내기 위해 좁디 좁은 화면에 텍스트들이 위로 흘러가거나 좌우로 흘러다닌다. 길거리 광고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인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 보면서 내가 원하는 것 나오면 잽싸게 마우스로 낚아채라고 마우스 훈련 시키는 것인가? 이런 경우는 그냥 화면을 넓게 쓰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움직이지 말고 다 보여주면 된다. 그래도 좁다고? 그러면 가장 최신 것, 또는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전체 보기]를 눌러서 보도록 하면 된다.

첫 화면 플래시
정말 나쁜 추세인데 우리 나라 웹 페이지들이 첫 화면에 플래시 애니메이션, 광고를 넣는 것도 모자라 메뉴를 죄다 플래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플래시 메뉴도 점잖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온갖 불필요한 애니메이션을 다 집어넣어 만들고 있다. 선택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은 없어져야 한다. 정말 강조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우리 회사/우리 기관이 방문자에게 호소하고 싶은 구호를 보여주려면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간결하게 골라서 정적으로 보여주면 된다. 사용자들에게 호소력있게 메시지를 만들고 내용을 담고, 시각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기획자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무작정 이것 저것 번갈아가면서 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기획자의 게으름이 산물이다. 게다가 굳이 그런 구호를 글자가 춤을 추면서 나오도록 하고, 새가 날아다니고, 구름이 흘러가면서 보여주어야 겨우 사용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기획자의 게으름과 유치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품 사용법을 소개하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쓰겠다고 하면 대찬성이다. 사용자가 제품 소개 플래시 애니메이션 보기와 같은 링크를 선택한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플래시를 볼 수 없는 사용자나 플래시보다 더 빨리 내용을 보고 싶은 사람, 내용을 인쇄해서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텍스트로 보기, PDF로 보기와 같은 대안적인 링크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플래시 비디오
요즈음은 플래시가 애니메이션 영역에서 벗어나 스트리밍 비디오로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반가운 일이다. 기존의 윈도우즈 미디어는 윈도우즈에서만 볼 수 있고, 퀵타임은 리눅스에서 볼 수 없고, 리얼 미디어는 리얼 플레이어 다운로드 받기가 너무 어렵다. 반면에 플래시 비디오는 플래시 플러그인을 깔아야 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OS와 브라우저에서 볼 수 있으니 일단 훨씬 많은 사용자를 수용할 수 있다. 이렇게 사용하는 경우에도 오디오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이나, 사운드 카드가 없는 사용자, 성질이 급해 텍스트만 빨리빨리 보면서 넘어가고 싶은 사용자, 외국인 등을 위해 캡션을 넣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재생, 멈춤,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음량 조절, 소거, 속도 조절, 화면 크기 조절, 캡션 표시 여부를 사용자가 제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광고
국내에서 최근에 유행하는 모든 형태의 플래시 광고는 모든 사람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공공의 적인 것 같다. 게다가 화면의 주요한 내용을 가리면서 등장하는 플래시 광고는 아마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싫어할 것이다.


플래시나 깜박임을 쓰지 않고도 사용자에게 전달하고자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만 간결하게 그래픽으로 나타낸 외국 사이트들은 매우 많다. 그리고 그와 대조적인 한국의 사이트들도 너무 많다. 2006년 7월 24일 현재 시점에서. 언제 바뀔지 모르므로...


  • 메인 이미지 하나로 시의적절한 key message를 전달하는 General Electric사의 홈페이지, 이와는 대조적인 한국의 삼성전자엘지전자

  • 전달하고자 하는 캠페인의 주요 포인트(What CEO wants. How the CIO delivers it.)를 아주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낸 IBM사의 홈페이지

  • 대학 캠퍼스의 자유로운 풍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고 첫 페이지에서부터 RSS에 대한 링크가 눈에 띄는 가보고 싶게 만드는 차분한 옥스포드 대학교 홈페이지

  •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거의 없는데, 메뉴를 선택하는데에 엄청나게 복잡한 플래시를 쓴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는 고려대학교 홈페이지

  • 나는 정말 자동차에 대해 알아보려고 방문했는데 방문한 고객에게 총체적인 짜증을 유발하며 고객을 내쫓는 한국의 GM대우 홈페이지

  • 같은 GM인데도 한국과 미국의 홈페이지 문화 차이를 너무 극명하게 보여주는 미국의 GM사 홈페이지. 원하는 차에 대한 정보를 어떤 곳에서 더 빨리,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찾을 수 있을까?

  • 비슷한 성격이지만 사이트 모든 곳이 다 깜박이고, 움직이고, 마우스 갖다 대면 요동을 치는 한국의 옥션과 오로지 가운데 작은 광고 하나만 약간 움직이다 마는 미국의 eBay

  • 한국에서 웹 접근성 캠페인을 벌이지만 깜박임, 플래시 메뉴, 흐르는 텍스트까지 스스로 만든 접근성 규칙을 지키지 않는 한국 정보문화 진흥원과 미국 유타 주립 대학 내에서 접근성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스스로 사이트를 매우 접근 가능하게 만들어놓은 비영리 기관인 WebAIM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해서, 또는 한국 사용자들의 미적인 수준이 높아서 메뉴에서부터 플래시를 써야만 한다고 제발 우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말 사용자의 주의를 끌고 싶고 멋지게 만들고 싶으면 무조건 깜박임을 쓸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 특성을 연구해서, 정교한 문구와 메시지에 걸맞는 인상적인 이미지, 그리고 내용물의 적절한 선택과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야 한다. 아무리 초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예측 불허의 움직임과 깜박임이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장애인에게 좌절을 준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2006-07-21

Lebanese feel the world has left them to be slaughtered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관련된 충격적인 사진을 보았다. 미국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마음껏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UN은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레바논의 시민들은 세계가 자신들이 학살당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데...

From Israel to Lebanon
Save the Lebanese Civilians Petition
We feel the world has left us to be slaughte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