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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3

한국 가곡 마중 악보 작업

한국 민속촌의 저녁 등불. 등불을 켜놓고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KBS 클래식 FM의 정다운 가곡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양의 예술 가곡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적인 느림, 기다림, 슬픔, 사랑, 인내가 느껴지는 곡들을 하나씩 들으면서 밤 시간의 적막함을 달래었었다. 

예술 가곡은 노래, 가사와 피아노 반주가 모두 중요하다. 그 당시 한국 가곡들을 들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슈베르트, 슈만의 서양의 가곡들과 비교해보면, 한국 가곡은 피아노 반주가 덜 세련되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한국 가곡 레코딩들이 피아노의 담백한 반주를 풍성해보이는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해서 들려준다. 그래도 예술 가곡의 아름다움은 피아노 반주가 잘 살려주었을 때 완성된다. 김동진, 김규환, 김성태, 조두남, 이수인, 이흥렬, 김순애, 김동환 등의 1세대 가곡들은 한국적인 정서가 잘 녹아있지만,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피아노 반주와 화성이 1% 아쉽게 느껴진다. 또, 80년대의 한국 영화를 보는 것같이 옛날 느낌이 묻어난다. 한편으로 너무 현대적인 불협화음과 반음계, 무조적인 특징을 너무 강하게 드러내면, 일반 대중들이 즐기기에는 좀 난해해진다. 

반면에 최근에 나온 김효근, 윤학준, 최진 등의 현대 작곡가들은 아마 이런 점을 간파했나보다. 놓치지 않는 한국적인 기다림과 그리움이 살아있으면서도, 약간의 대중성을 더한 7화음, 9화음, 11화음, 반음, 그리고 당김음을 세련되게 섞어가며, 아름다운 멜로디와 피아노 반주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작곡가 김효근은 본인의 작품들을 아트 팝(art pop)이라는 장르로 불리기를 원한다. 

인터넷에 연주 레코딩과 반주MR은 넘쳐나고, 악보도 많이 돌아다닌다. 그런데, 아쉽게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악보가 하나도 없다. 뮤즈스코어에서 한국 가곡이나 클래식 곡들을 작업을 해보면, 커뮤니티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엉터리 악보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곡, 그리고 그것을 악보로 기록하는 것은 매우 정교하고, 고통스런 작업이다. 작곡가가 한 음, 한 음을 고민해서 그려넣은 것을 하나, 둘, 조금씩 틀린 악보를 보다 보면 정말 답답하다. 

그래서 나의 악보 작업의 원칙은 (1)결함 없는 악보 만들기(flawless scoring)와 (2)연주의 감성을 살리기이다. 클래식 곡일수록, 특히 쇼팽의 피아노 곡들은 극단적인 루바토(rubato)와 다이나믹을 잘 가미하지 않으면, 악보상으로는 곡의 느낌을 절대 살릴 수 없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은, 더구나 사람이 노래하는 성악은, 연주(performance)에서 해줘야 할 일이 매우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니, 악보에 숨은 요소를 많이 넣어야 한다. 원래 악보에는 없지만, 템포가 수시로 바뀌고, 숨을 쉬어야 할 때가 있고, 보이지 않는 프레이징을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페달링과 다이나믹을 조정해야 한다.

결함 없는 악보라는 원칙은 비교적 잘 된 것 같다. 뮤즈스코어 커뮤니티와 인터넷에 수많은 잘못된 악보들과 달리, 정확한 클래식 디지털 기록물로서 악보를 만드는 것까지는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연주의 감성을 악보에 숨은 요소를 넣어서 살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엄청난 노가다(?)가 들어가는 일인데, 너무 힘들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기 일쑤다. 

고전적인 한국 가곡에서 약간 현대적인 곡으로 넘어와 작곡가 윤학준의 "마중"을 골랐다. 허림 시인의 시도 아름답고, 그리운 마음으로 노래한 노래와 반주도 아름답다. 여름 밤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람결에 그리움을 실어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지만, 그립다는 것은 오래 전 잃어버린 향기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마중 - 윤학준 by Greg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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