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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1

다양성이 주는 풍요로움에 대한 찬미, 롱테일 경제학

롱테일 경제학. 크리스 앤더슨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즉흥적이고 짧게 소화할 수 있는 TV, 인터넷과 친해지면서 책과 내가 얼마나 거리가 멀어졌는지...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읽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난 주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더운 틈을 타서 밀렸던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리고 웹과 정보 기술의 세계에서 롱테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 읽어볼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롱테일 경제학은 웹 2.0의 경제학이라고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시어스 로벅의 카탈로그 우편 판매에서부터 롱테일 현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롱테일 경제학이 사실 우리 생활과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상당히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전문성과 지식의 롱테일 현상이다. 세상의 지식, 정보, 전문성은 지금까지 소수의 엘리트들이 다 독점하였고, 그들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지대하였다. 그런 전문성의 정점에는 지식을 생산해내는 학교, 뉴스를 생산해내는 매스 미디어, 특허로 꽁꽁 묶인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거대 기업, 거대 광고주를 끌어들일만큼 영향력이 있는 매체와 영향력이 있는 매체에만 광고를 내는 거대 광고주, 전문적인 지식과 수련을 통해 의료 행위를 독점할 수 있는 의사, 간판만 내세워도 누구나 꺼뻑(?) 죽는 명문 학교 출신자들, 말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기업들이 알아서 기는, 모든 고급 정보를 모을 수 있는 국가 권력, 거대한 전문가 군단과 자금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내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간판을 이용해, 때로는 명성을 이용해, 때로는 권력을 이용해, 때로는 거대한 조직 동원력을 이용해, 또는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고 문화를 이끌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박스 오피스 1위인 영화에 우르르 몰리고, 톱텐에 들어가는 가요를 줄줄 외었으며,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는 저녁 드라마와 초 히트 상품이 된 베스트 셀러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류 사회의 구성원임을 즐겼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은가? 다들 똑같은 스토리에 열광하고, 똑같은 물건을 하나쯤은 갖추어야 하고, 똑같은 음악적인 취향을 가져야 하는가? 왜 세상에 나오는 수십 만종의 책 중에서 단 몇 권만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나머지는 세상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가?


저자는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이 희소성의 가치, 한계 효용, 제한된 선택이라는 기반 위에서 세워졌다면 이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널리 보급되고, 생산품을 쉽게 유통할 수 있는 새로운 웹의 세계가 열리면서 80대 20으로 대표되는 선택과 집중의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 블로그의 등장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생산의 장을 찾지 못했던 숨은 재주꾼, 숨은 전문가들이 블로그를 통해 의미있는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블로거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는 주류 미디어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특수한 영역의 전문성을 점점 키워가고 주류 미디어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다가서고 있다. 주류 미디어가 여론을 독점하던 시대에서 뉴스의 롱테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양과 질에서 브리태니커를 훨씬 앞서버린 위키피디아도 마찬가지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획일주의와 흑백 논리의 유혹에 쉽게 빠졌다. 획일적인 군사 문화를 거부한다던 그들도 사실은 진골, 선골 운동권의 계보를 따지며, 누가 더 선명한 운동가인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사람들은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지를 항상 원망하였다. 정말 80년대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러니 90년대에 생활 문화, 먹거리, 성적 자유, 환경 운동, 소비자 운동, 장애인 문제, 가정 폭력, 학교 문제, 인종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시민 사회 운동이 등장할 때 획일주의 논리를 고집하려 했던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의 관심과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역도 이제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롱테일 경제학을 나는 복잡성의 경제학으로 이해하였다. 소수의 주류와 스타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회가 이제는 길게 꼬리를 이루며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일반 범부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꼬리쪽에 있는 사람들도 UCC를 만들 수가 있고, 구글의 애드센스와 같은 소규모이지만 짭짤한 광고를 유치할 수도 있고, 스스로 광고주가 될 수도 있으며, 유명 블로거가 될 수도 있고, 거라지 밴드를 이용해 음악 작곡가가 될 수도 있고,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 기관에서 전문가 회의를 몇 번씩 하고 전문가들을 모셔오려고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사이트는 파리를 날리지만, 일반 사용자가 만들고,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가감할 수 있게 운영한 사이트는 인기가 좋은 것이다. 롱테일 현상은 단지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문화, 정치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이제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 당신만의 영역에서...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다음에 제시된 것들은 우리가 희소성 사고 때문에 빠지기 쉬운 몇 가지 정신적 함정들이다.


  • 모든 사람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 모든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한다.

  • 히트 상품이 아니면 실패한 것이다.

  • 엄청나게 성공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 직접 제작 비디오는 좋지 않다.

  • 자비 출판은 좋지 않다.

  • 인디 음악이란 음반사와 계약을 하지 못한 음악이다.

  • 아마추어는 서투르다.

  • 잘 팔리지 않으면 품질도 좋지 않다.

  • 만일 좋은 제품이라면 반드시 인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엄청난 선택권이 주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인데...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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