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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4

내면에 눌려있는 평화를 일깨우는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책표지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박노자와 같은 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놀랍도록 감수성이 뛰어난 한 한국인이 우리가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일상화되어 느끼지 못했던 우리의 자화상을 너무나도 잘 지면화했기 때문이다. 그런 박노자 교수의 또 하나의 저작,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라는 책의 부제는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이상적인 복지 사회로 부러워 마지않는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을 박노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리고 책의 첫머리에서 보여지는 노르웨이의 사회는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 사이의 체계도, 위아래도, 질서도, 권위도 없는 곳이었다. 다만 사람이기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지, 어떤 사람이 교수라고 해서, 또는 버스 기사라고 해서, 다른 인종이거나, 왕자이거나 심지어 죄수라고 해서 특별히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거나, 권위를 내세우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는 사회! 분명 부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노르웨이 사회의 민주성과 선진성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고, 북유럽 사회의 번영과 평화 이면에 침략의 역사와 제3세계 문제에 대한 외면, 혹은 주변부 국가들의 고통이 있고, 그들의 민주주의는 온 세상에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라기보다는 그들 국가 내부에 한정된 개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꿈꾸기 힘든 좌파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고, 국가에서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소수 지방 언론과 공산당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다양한 의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는 분단의 벽에 가로막히고, 국가 보안법의 올가미에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고, 혼혈아가 트기라고 놀림받으며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동경스러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북유럽 사회나 한국 사회를 가리지 않고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 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온 폭력에 대해 맹렬히 고발하고 있다. 온건한 민족주의조차도 어떻게 히틀러의 광기로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에서, 우리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폭력적 침탈에 시달리고, 분단과 대치, 오랜 군사 독재 통치라는 특수한 상황에 오래 머물러 있다보니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적 가치와 혼합되고, 은근하게 핏줄과 혈통이 인류의 보편성과 다양성보다 더 중요하게 자리잡아왔다. 특히 이런 잠재된 혈통 집단 우선주의는 최근의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맹목적인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의 광풍으로 변형되어 생산적인 토론과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다른 인종,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배제와 적개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냥, 군복무, 학교에서의 체벌, 동물원에서 죄없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야생 동물들, 포르노 영화속의 강간과 같이 이미 만연한 인류 사회의 폭력에 대해 그는 단호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폭력을 거부하는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가 이미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집단, 특히 국가의 명령은 종종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화되어 군복무는 조국의 부름이 되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왔다. 우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향해 힘든 일을 기피하려는 남자답지 못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해오고, 우리가 겪었던 폭력에의 추억을 당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잔인한 논리로 양심과 종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군대에 몰아넣어, 수 천명이 군 내부에서 의문사당하거나 자살하고 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군대의 극단적인 폭력만은 거부하겠다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는 감옥에 가거나 군대에 끌려가 폭력과 권위에의 복종을 배우고, 실습하고 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심지어 전 사회가 병참 기지로 바뀌기를 진정 원하는 것인지, 여성까지 군복무를 시켜야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성장하면서 내면에 체득해왔던 폭력과 불평등에 대한 자각, 그리고 혹시 어렸을 때에 간직하고 있었으나 어른이 되면서 까맣게 잊혀져버렸을 우리 마음 속의 평화와 인간 존중의 심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책, 권하고 싶은 책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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