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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1

잘 쉬는 기술

 회사의 동료들이 한참 나가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뻑뻑할 때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을 읽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힘들면서도, 나는 유능해서 그런 것 쯤이야 다 할 수 있다는 자만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좀 여유 있는 시간이 되면, 진정 휴식을 취한다기 보다는 그냥 늘어져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잘 쉬는 기술 책표지
잘 쉬는 기술(클라우디아 해먼드) (출처: 교보문고)

그래서 정말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잘 쉬고, 재충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잘 쉬는 기술"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기술" 제목이 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상 그런 기술을 따라하거나 적용해보려면 안 되는 이유가 100가지는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이 책은 기술을 전수하거나 강요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전 세계 1만8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10가지 휴식에 대한 사색과 과학적 발견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만약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면, 책에서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제공해준다. 

  • 마음챙김 명상은 나에게도 좋은 효과가 있을까?
  • 모짜르트 음악은 듣는 사람들에게 정말 특별한 효과를 내는가?
  •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뇌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란 무엇인가?
  • 소파에 파묻혀 TV만 보는 것은 정말 해로운 것인가?
  • 자연(nature)은 정말로 치료나 치유의 효과를 주는 것인가?
  • 독서를 하는 동안 눈과 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2021-03-14

이수인 곡, 최재호 시 석굴암 악보

Korea-Gyeongju-Silla Art and Science Museum-Seokguram model-01. 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오랜만에 뮤즈스코어(MuseScore)를 이용해 한국 가곡 석굴암을 만들어보았다. 어쩌다보니, 이수인 선생님의 곡만 벌써 두 번째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 올린 곡곡은 고향의 노래였다. 모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취미로 열심히 반주 연습 하던 곡들이다. 이 외에도 이수인의 별도 열심히 연습하던 곡이었는데, 지금은 피아노 실력이 많이 줄어들어, 직접 연주하면 너무 덜커덩거리게 된다. 그래서 악보로 만들어본다. 컴퓨터로 악보로 만들면, 템포와 다이나믹스가 너무 기계적으로 되어 듣기에 많이 거북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템포와 다이나믹스를 조금 손보아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해보았고, 원래 악보에 없던 페달도 넣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미디 음원이 너무 건조하여, 약간의 효과(리버브)도 넣었다. 여전히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런 사운드이지만...

석굴암 - 이수인 by Greg SHIN

2018-12-14

공간에 눈을 뜨다: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저)를 읽고

유현준 저. 어디서 살 것인가 책 표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심한 길치이고, 공간 감각도 둔해서 건축의 세계는 나와는 참 인연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주요 장면들은 사실 공간과 얽혀 있는 것들이 많았다. 비가 오면 걸레로 물이 나가는 입구를 틀어막아 물놀이했던 한옥집의 마당, 따사한 햇볕과 함께 기억되는 한옥집의 마루, 동네 친구들과 자치기하고 구슬치기 하던 흙바닥 골목길, 초여름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했던 주택가, 그리고 서울의 자취집에 가는 정다운 숲길과 같이 공간에 대한 기억과 정서가 깊게 남아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삶과 얽혀 있는 공간이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우리 주변의 공간과 도시, 인간의 삶, 과거의 역사, 미래, 기후, 기술의 발전, 사회와 정치 이야기를 버무려서 재미있게 풀어낸다.

처음에 학교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나라 학교 건물들은 영락없이 교도소와 비슷하고, 학교 운동장은 사실 군대의 연병장과 비슷하다는 저자의 지적에 아하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학교는 획일화된 건물에서 똑같은 공부만 하거나, 아니면 흙먼지 날리는 연병장 같은 운동장에서 축구만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학생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하고, 어울리고, 산책하고, 작은 놀이를 하려 해도, 지금의 학교 건물과 운동장은 오직 획일화된 교실 수업과 몇몇 남자들에게만 즐거운 축구 외에는 다른 것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나는 축구를 잘 못 했다. 아니 심하게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생일날에 친구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하자고 했을 때 너무 싫었다.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남자이니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해야 할 때가 가장 괴로웠고, 그런 전체주의적 상황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공적인 정주 공간(머무르는 공간)이 줄어든 요즘 아이들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거의 없다. 낮은 천정의 아파트와 천정 높이가 정해진 학교를 벗어나면, 학원에 가기 위해 머리가 닿을 듯한 봉고차를 타고, 다시 천정으로 막힌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봉고차를 타고, 아파트에 와서 꽉막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로 들어가면 4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이런 변화하지 않는 실내에서의 시간들로 꽉 차 있는 상태에서 어떤 공간이 과연 의미있는 경험과 기억으로 남겠는가? 그들에게 변화하는 것이란 오로지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속의 화면 뿐이다. 그러니 변화하지 않는 답답한 여러 실내들(점)들의 단편적인 경험 속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변화의 경험은 스크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요즘에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도 주로 실내 공간이다. 대형 쇼핑몰, 식당, 키즈 카페 등등등. 그런데 그런 곳에 가기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아이에게는 아파트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 가서, 꽉 막힌 차를 타고, 모든 것이 끊긴 채 갑자기 대형 쇼핑몰의 비슷비슷한 주차장으로 장면이 바뀐 것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조금씩만 다른 키즈 카페 실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기까지, 엄마, 아빠와 함께 걸어가며, 주변의 나무가 바뀌고, 풍경이 서서히 바뀌고, 다양한 모습의 상점들이 있고, 넓거나 좁은 길들이 있다가, 어디를 돌아, 어디를 지나 드디어 놀이터에 도착한다는 그런 연속적인 경험을 하기 어렵다. 단지 집, 차, 실내 키즈카페와 같은 불연속적인 공간들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면 항상 무언가 아쉽다. 연속적인 경험이 끊기기 때문이다. 길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나는 정말 길을 좋아한다. 길을 걸으며 서서히 바뀌는 풍경과 그 길의 고유한 정서를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공간 감각이 둔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내가 공간에 대해 둔해진 것은 아닌지…

뉴욕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뉴욕에서 놀란 것은 서울처럼 넓은 대로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건물은 높은데, 8차선, 16차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뉴욕의 길은 2차선 길이 상당히 많았다. 한편으론 답답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2차선 길들을 따라 풍경이 참 많이 변했다. 길거리 음식이나 기념품을 파는 크고 작은 가게, 센트럴 파크, 뮤지컬 극장, 아리랑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와 같이 8차선 대로에서는 시끄럽고, 바빠서 존재하기 어려운 그런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펼쳐졌다. 그래서 비록 도심지의 거리이지만 거리의 모습과 연관되어 그 때의 경험들이 뇌리에 박혀있다.

건축물과 도시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건축과 도시는 다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책의 저자는 화목한 세상을 꿈꾸며 건축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설계된 공간(작게는 주택에서부터 크게는 도시, 공원, 큰 집합 건물, 도로, 다리 등을 포함)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고, 나같이 둔한 사람에게도 공간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 더 뜨게 해 준 좋은 경험을 선물해준 책이었다.

덧붙이는 말: 요즘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함께 걸어 좋은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문구점을 지나서, 장난감집 지나서 학교 가는 길, 너랑 함께 가서 좋은 길… 과 같이 시작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과연 이런 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거리가 있을까?

2018-06-13

그랜드 피아노 음량 줄이기

아내가 운영하는 학원의 그랜드 피아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여러 가지 음량 감소 방법을 알아보았다. 좋은 피아노일 수록 쨍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고, 깊고 맑은 소리가 나는데, 그런 소리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피아노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정제된, 그리고 단정한 소리를 얻을까 고민하였다.

  1. 가장 간단하게는 윗뚜껑(리드)을 덮는다.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 보면대를 피아노 안쪽에 설치해야 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윗뚜껑을 열어야 한다. 뚜껑을 덮고 보면대를 설치하면 보면대가 너무 높아져서 키가 작은 사람들이 악보를 보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

  2. 바닥에 매트를 까는 방법이 있다. 바닥에 양탄자를 깔았는데, 그랜드 피아노는 향판이 아래쪽에 있으므로,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가 단단한 바닥에 난반사되는 소리를 조금 잡아줄 수 있다. 그런데 바닥에 양탄자를 깔면 먼지와 때를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3. 피아노 바퀴에 진동을 흡수하는 고정 받침대, 소위 말하는 insulated caster를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피아노 내부 진동이 바퀴를 통해 바닥면에 퍼지는 것을 줄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랫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할 경우에 밑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를 어느 정도 잡아줄 수 있다고 하는데, 연주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연주자가 느끼는 음량 감소는 거의 없다.
    바퀴에 진동을 흡수하는 고정 받침대를 설치한 모습

  4. 해머와 현 사이에 머플러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도 상당한 음량 감소를 가져오지만, 해머가 현을 직접 치는 것과 가운데 천이 있는 것과는 터치감과 음색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므로 썩 내키지 않는 방법이다.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가운데 약음 페달이 따로 있지만, 그랜드 피아노는 그렇지 않으므로, 따로 설치를 할 수 있다.

  5. 현 위에다 천을 덮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간단하게 얇은 이불이나 천을 현 위에 살짝 덮어주는 방법인데, 소음 감소는 상당히 된다. 그러나 역시 음색의 변화를 가져온다. 피아노 소리가 조금 더 멜로우(mellow)해지는데, 음색의 변화는 필수적으로 피아노 연주시 연주자가 터치하는 방법에 변화를 가져오므로 썩 유쾌한 상황이 안 된다.

  6. 사일런트 모듈을 다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해머가 현을 때리지 못하게 지지대가 잡고, 전자적인 센서가 터치를 감지하여 부가적으로 장착한 미디 음원에서 소리를 대신 내주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인 쨍쨍거리는 소리를 잡아주는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너무 흘러간 것 같다. 헤드폰을 쓸 수도 있고, 디지털과 어쿠스틱 피아노를 함께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나름 장점이 있지만, 우리의 목적에는 잘 안 맞았다. 요즘 디지털 피아노의 경우, 보통 1번 패치인 그랜드 피아노 사운드에 온갖 기술을 다 쏟아부어, 엄청나게 큰 샘플링 사이즈가 배정된다. 통상 야마하, 커즈와일, 카와이, 코르그 등 하드웨어 업체 뿐 아니라 Synthogy등 가상악기로 피아노를 만드는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피아노 사운드를 개선하기 위해 대부분의 자원을 쏟는다. 또는 완전히 피지컬 모델링(physical modelling) 방식으로 피아노의 온갖 변수를 고려하여 시뮬레이션한 사운드를 내주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대표 주자로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롤랜드의 상위 기종(V-Piano나 LX 시리즈)이나 피아노텍(Pianoteq) 등이 있는데, 샘플링 음색보다 다이나믹 레인지가 상당히 넓은 게 특징이다. 그런 반면, 사일런트 모듈들은 피아노 사운드가 그리 만족스러운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7. 좀 돈이 들고 번거롭긴 하지만, 쓸데없는 잔향을 제거하고 정숙한 소리를 얻기 위해서는 방에 방음/흡음 공사를 하는 방법이 있다. 이 때에도 외부에 음이 세어나가지 않는 목적의 방음인지, 또는 내부에서 잔향을 줄이고 정갈한 소리를 얻기 위한 흡음이 목적인지에 따라 조금 다른 재료의 방음/흡음 공사를 해야 한다.

  8. 국내 한 업체(오케이피아노)가 광고하는 방법으로 밑으로 향해 있는 그랜드 피아노의 향판을 덮는 방법이 있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향판이 뒷쪽에 있으므로, 향판을 막는 것이 비교적 쉽다. 적당한 흡음재를 사서 뒤쪽을 대충 막거나, 또는 흡음재로 대고 벽에 피아노를 붙여버려도 된다. 그런데 그랜드 피아노의 향판을 덮기 위해서는 접착제를 쓰거나, 양면 테이프를 쓰거나, 못질을 해야 한다. 그리고 향판을 막는다고 해도, 피아노 윗쪽으로 나오는 소리를 효과적으로 잡지 못한다.

흡음재를 붙인 한 쪽 벽면

우선 벽면에 흡음재(7번 방법)를 붙여 보았다. 한쪽은 조금 두껍고 부드러워 흡음 효과가 조금 더 뛰어나다고 하는 폴리에스테르 흡음재를 붙였다. 소재가 가벼워서 글루건을 적당히 바르고 붙여도 되고, 실리콘을 발라 붙여도 된다. 붙이는 것은 매우 쉬운데, 어려운 것은 자르는 것이다. 아무리 자를 대고 반듯하게 자르려고 해도, 반듯하게 잘라지지가 않았고, 자를 때 먼지도 꽤 많이 나왔다. 다른 한 쪽은 소위 아트보드라고 좀 더 압축된 폴리에스테를 판을 붙였다. 이것은 무게가 좀 나가므로 타카로 박아주거나 실리콘을 사용해서 붙여야 한다. 글루건에서 쏘는 글루만으로는 좀 약한 것 같았다. 또 다른 면에는 방염 폴리계란판을 붙였는데, 이것도 가벼워서 붙이기는 매우 쉽다. 다만,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은 역시 자르기가 힘들다. 몇 가지 조건에서 약식으로 실험해본 바로는 흡음 효과는 폴리 계란판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이 일반 흡음재, 마지막이 압축된 아트보드 순이었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아트보드, 일반 흡음재, 그리고 마지막이 계란판이다. 계란판 모양은 무슨 색을 넣어도 예쁘지가 않았다. 그러나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는 방이라면 향판 뒷쪽 벽면에 계란판을 붙여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아트보드를 붙이고 있는 벽면

그래도 그랜드 피아노 소리가 불만스럽다. 그래서 오늘 오케이피아노에 부탁해서 피아노 조율을 하고, 그랜드 피아노 밑바닥을 막았다 (8번 방법). 그리고 하는 김에 바퀴에 절연 받침대도 설치했다. 그리고는 짠, 잔뜩 기대를 하고 피아노를 쳐보았는데... 결과는 대실망이다. 오케이피아노 쇼핑몰에 소비자가 솔직한 사용 후기를 다는 곳이 마땅치 않아 블로그에 적어본다.

우선, 대부분의 중소 업체들이 왜 세금계산서나 카드 결제 해달라고 하면, 가격을 올린다. 거꾸로 말하면, 거래의 증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매출을 누락시키고, 세금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율비가 10만원인데 카드 결제나 현금 영수증, 세금계산서 되냐고 했더니 곤란해한다. 그리고 10%를 추가로 더 내라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10%를 더 주었다. 오신 조율사분은 매우 친절하긴 했지만, 조율의 질은 별로였다. 조율이라는 것이 단순 튜닝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음의 밸런스를 잡아주고, 음색과 터치의 상관관계 등도 약간 조정해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정말 정말 단순 튜닝 그 이상이 아니었다. 피아노 밑에 설치된 방음판과 바퀴에 설치한 절연 받침대의 효과는 정말 의심스러웠다. 방음이 목적이 아니고, 깨끗하고 정제된 소리를 얻기 위한 목적이 더 컸는데, 방음도 거의 안 되었고, 피아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쨍쨍거렸다.

지금까지의 잠정 결론이다. 그랜드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고 쨍쨍거린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좀 더 크고 좋은 피아노로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방에 방음/흡음 공사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쨍쨍거리는 소리가 조금은 준다. 세 번째, 그냥 뚜껑을 덮는다. 그래도 시끄러우면, 이불 하나 구해서 현을 덮어준다.

2018-02-27

Every problem is an opportunity in disguise는 무슨 뜻일까

구름 사이의 햇빛
Every problem is an opportunity in disguise.

이 말은 미국의 두 번째 대통령이었던 존 아담스(John Adams)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헨리 카이저(Henry Kaiser)가 한 말이 있다.

Problems are only opportunities in work clothes.

어떤 비디오를 보다가 강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는데, 앞뒤 맥락을 고려하면 문제를 피하지 말고 기회로 여겨라. 그리고 문제를 피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뚫고 나가는 것이 훨씬 현명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이다는 대략 이런 뉘앙스인 것 같은데, 그래도 왜 in disguise이고, 왜 in work clothes인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몇 가지 구글링을 해보니, something in disguise는 말 그대로 뭐가 가면 뒤에 숨은 상태라는 뜻이다. 위키셔너리 사전에 예시로 나온 숙어는 blessing in disguise, 즉 축복이 가면 뒤에 숨었다라는 뜻인데, 결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행 같지만, 사실 가면 뒤에 커다란 축복, 또는 큰 행운, 좋은 것이 숨겨져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음 사전에는 불행해보이지만 사실은 행복한 것이라고 해석이 되어 있다. 또 어떤 곳에는 전화위복, 새옹지마라고 해석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이해가 된다.


Every problem is an opportunity in disguise. 즉, 모든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이고, 골치거리이지만, 알고 보면 가면 뒤에 기회가 있다. 즉, 문제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숨어있는 도전 기회를 찾으라는 뜻이 숨어 있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in disguise 대신에 작업복, 즉 in work clothes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비슷한 뜻일 것 같긴 한데 왜 하필이면 작업복일까가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또 검색을 해보니 쿼라(Quora)에 상당히 그럴듯한 답변이 올라온 게 있었다. 답변자의 해석에 따르면, 작업복은 일할 때 입는 옷 또는 회사에서 입는 정장 옷인데, 일반적으로 그 옷을 입은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작업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계속 일을 해야 하고, 일이 끝나면 우리는 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어한다. 다시 말해서, 작업복은 불편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일단 불편함을 느끼고, 불편함은 일단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제는 불편함 뒤에 숨은 기회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편안한 영역(comfort zone)으로 가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불편하게 보이고, 피하고 싶은 것이더라도 그 안에 숨어있는 기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2018-01-28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갔다 오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전시회 포스터 (2017년 12월 27일에서 2018년 1월 27일까지 용인 포은아트홀 갤러리)
내가 사는 동네에는 포은아트홀이라는 큰 예술 공연장이 있다.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인데, 막상 포은아트홀에서 하는 공연이나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 곳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별 헤는 밤"를 보게 되었다. 윤동주는 시인인데 왜 미술 전시회일까라는 약간의 궁금증으로 전시장에 들어가서 그림들을 한 두 개 보고 있을 무렵, 누가 다가와 책을 한 권 준다. 2017년에 출간된 별 헤는 밤(책)은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이다. 윤동주의 시 작품 하나하나를 모티브로 하여 6명의 화가들이 시를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으로 탄생시킨 그림과 윤동주의 시를 엮어서 시그림집으로 만든 책이었다. 전시회는 미술 전시회지만, 당연히 시를 모르고 그림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책을 펼치고, 그림과 짝지어진 원본 시를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그림 감상을 하였다. 처음에는 약간 건성으로 시와 그림을 보았는데, 두 세 작품을 보다 보니 건성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시가 너무 깊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 전시회에 와서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작품 한 작품을 감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윤동주의 시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상상을 해보았다. 이 시를 읽고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지. 내가 상상한 시의 이미지와 화가들이 표현해낸 그림이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매우 달랐다. 다시 말해, 흔히 아름다운 시에 투명하고 화사한 수채화 배경 그림이 입혀진 그런 시화전이 아니었다. 20세기의 위대한 시인의 문학 작품을 소재로, 21세기 현대 미술가들의 회화가 탄생했지만, 둘은 또 독립적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시장에서 책의 뒷편에 있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소개와 작품 해설 부분을 마저 읽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일본 군국주의 광기가 극에 달하던 1945년 2월에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하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 그는 작품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했다기보다, 어두운 야만의 시대에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며,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젊은 지식인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가 바라는 이상의 세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곳을 그리워하며 노래하였다. 그 이상 세계의 집약체가 "별"로 나타나고, 때로는 "고향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불행한 시대에 한 나약한 학생에게 요구하는 광폭한 도전들에 대해 그는 아침을 기다리는 절대적인 의지와 맑은 영혼을 유지하고자 저항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그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정독하고, 다시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시인은 "쉽게 씌어진 시"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지만, 그의 시는 결코 마술같은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깊은 내면의 성찰이 그의 삶에 투영되고, 다시 그것이 압축되고 조탁되어 탄생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에 나의 짝꿍이 졸업할 때에 자기가 좋아하는 시 여러 편을 노트에 적어서 나에게 선물로 준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친구인데, 그 때에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시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구나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밥 딜런(Bob Dylan)이 노벨상을 받으면서 그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비롯한 노래들은 도대체 무슨 가사였을까를 다시 보게 되었다. 영어라는 핑계로 노랫말을 대충 흘려듣고, 노래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운 가사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래에 가사들을 더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또다른 계기가 있었다. 최근에 나의 아버지가 나이 일흔이 훨씬 넘어서 시인으로 등단하셨다! 아버지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관찰하고, 경험하고, 습작하는지를 대략 옆에서 바라보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스케치한 내용을 수 백 페이지의 노트에 정리하고 계셨다. 그리고 집에 가면 나에게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평을 해달라고 요청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현대 국어의 맞춤법에 비추어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겠다는 정도의 조언과, 아주 표면적인 감상평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시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매우 큰 변화였다.
이번 시그림전에서 불행한 시대를 살다가 안타깝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윤동주 시인과 그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었고, 그런 문학 작품을 화가들은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했는지를 엿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였다. 왜 전시회장 벽면에 시를 직접 써붙이지 않고, 불편하게 시집을 따로 책으로 나누어주었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책으로 나누어주지 않았으면 이렇게 시와 해설을 정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하나 사서 아버지에게 선물로 보내드려야겠다.

2017-11-26

러빙 빈센트를 보고

Loving Vincent logo
동서고금,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것이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30권인가 50권짜리 명화집을 통해서였다. 화가별로 정리된 명화집에서는 고전적인 앵그르, 다비드에서부터 낭만파의 거장 들라크루아 (그 책의 표기로는 드라크라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쇠라, 그리고 어린 시절 꼬마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해설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은 뭉크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다른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많은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고흐가 나의 가슴 속에 들어온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주 동안 네덜란드로 출장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 가보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렘브란트, 몬드리안과 함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인 것도 몰랐었다. 내 기억에 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흐라는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첫 번째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그를 더 강렬하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고흐는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깊이 고뇌하는, 그리고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해 진실한 존경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로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라이브하고,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림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그의 생각, 삶에 대한 태도, 조금 더 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노래,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는 가장 좋아하는 팝송 이 되었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배경으로 한 우산을 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과 팬심(?)의 표현이었다.
어제 그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세 편의 영화가 있는데, 뭘 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막연히 고흐에 관한 영화겠거니 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 100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초당 12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책 속에서, 작품집에서 정지되어 있던 고흐의 그림들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며, 들판을 달리던 기차가 실제 연기를 뿜어내고 경적을 울렸으며, 그림 속의 등불이 아른거리고, 밤하늘의 별이 휘둥그렇게 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슴이 뛰었다. 특히, 가셰 박사와 아르망의 대화 장면은 마치 고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라이브한 인물과 배경이 아름다웠다.
고흐 인생의 마지막 거처인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한(absolutely calm) 상태였다고 고백했던 고흐가 6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추적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100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영화 보는 내내 무겁게,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빈센트(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알려진 노래) 음악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나의 가까운 지인을 방금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고흐의 편지집에는 밑줄 쳐가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가 실제로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을 건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Thank you, Vin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