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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8

한비야의 멈추지 않는 걸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저.

오지 여행가로 유명했던 한비야가 긴급 구호 전문가로 변신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녀의 변신 이후 지난 5년간 아프가니스탄, 말라위,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북한, 팔레스타인, 네팔, 서아시아의 쓰나미 현장 등 정말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참혹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긴급 구호 요원으로 활동했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한비야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그녀의 팬이 되어버린다. 특유의 친화력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소명 의식으로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서 그녀는 홍보 전문가로 그리고 물자 배분가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책이 없었으면 관심은 커녕 이름도 몰랐을 서아프리카의 시에라이온, 라이베리아에 있는 소년병들의 삶에 대해 양심있는 지구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으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있었기 때문에 표시하지 못하고 그냥 한 번 읽고 넘어간 것이 너무 아쉽다.


세계에는 당장의 삶 자체를 위협받고 기본적인 생명권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의 고통도 겪었고,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며 싸우면서 전쟁과 기아, 가난의 아픔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극도의 어려움을 현재도 겪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쏟아야 할 때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도움이 일시적이지 않고 그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먹을 거리를 제공해줄 한 줌의 "씨앗"이라는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도 한비야가 묻는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라고. 그래서 그 안타깝고 괴로운 현장에서, 때로는 버겁고 무섭고, 능력에 의심이 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토하는 한비야는 그래도 현장의 사진 속에서 싱글벙글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말한다.


"그건 아마도 희망의 싹 때문일 것이다. 재난의 크기와 원인은 달라도 마음을 열고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파란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척박한 땅을 뚫고 돋아난 그 작고 기특한 것을 보았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2007-04-02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의 키워드를 읽고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 키워드 책표지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주말에 서점에 들러 과감하게 산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이다. 책을 사고 나서 2주일간 서울로 출장을 다녔는데, 출장을 가면서 지하철에 있는 시간이 많아 책읽기에 좋은 환경이 저절로 생겼다. IT 분야의 컬럼니스트들은 대부분 배경이 엔지니어인 경우가 많다. 분야의 특성상 기술적인 배경이 전혀 없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경향성이나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정유진NHN에 근무하는 웹 기획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훌륭한 기획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참 부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웹 기획을 하건, 웹 기술 또는 웹 디자인을 하건 자기 영역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사회 저변에 흐르는 큰 변화의 틀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정유진은 웹 2.0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들을 꿰뚫는 13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시하였다. 예전에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을 읽었을 때 느꼈던 흥미와 설레임이 다시 배가 되어 살아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다시 웹 2.0의 키워드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관계라는 단어이다. 과거의 웹은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링크"였다. 물론 링크는 지금도 매우 중요한 "관계"를 설정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아지고, 공급자도 다양해지면서 그들간의 관계를 단순하게 링크로만 맺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그리고 아주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매우 뛰어난 소수의 전문가 또는 공급자가 관계를 맺어주기에 웹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너무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들이 많아지면서 웹은 지나치게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 쓰레기장에서 숨어있는 보물을 용하게도 잘 찾아주는 녀석이 바로 "구글"이다. 즉, "구글"의 검색은 웹 1.0 시대의 천재이다. (물론 구글은 웹 2.0시대를 연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웹 2.0 시대가 오면서, 쓰레기가 데이터로 변모한다. 마이크로포맷 등을 통해 데이터의 규격이 생기고, XML 웹 서비스라는 것을 통해 전혀 소통이 불가능했던 데이터와 다른 곳에 있는 데이터의 소통 방법이 생기고, 기존에는 데이터로 취급하지 않았던 데이터들의 관계나 숨은 데이터(메타 데이터)가 새로운 데이터가 된다. 기존의 웹에서 단일한 사이트 내에서만 조회 가능하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조회(쿼리)가 이제 전체 웹을 꿰뚫으며 가능해진 것이다. 웹 2.0은 기존의 웹 1.0 시대에서 팀 버너스 리가 꿈꾸었던 시맨틱 웹에 한 발 더 다가선 개념이다. 단일한 서비스나 단일한 사이트가 아닌 웹 전체가 거대한 네트워크가 되고, 전체 웹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사용자가 또는 기계가 원하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추출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은 사실 인간의 지식 표상(knowledge representation)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아이디어를 주고 받은 결과이다. 인간의 뇌세포들은 시냅스를 통해 매우 복잡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고, 지식들이 한 개의 뇌세포가 아닌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즉, 하나의 개념이나 지식을 활용하려면 관계있는 모든 영역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 활성화되는 정도는 과거에서부터 축적되어온 지식들간의 연결 강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인간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 사고를 확장해갔는지도 모른다.


김중태 원장은 그의 저서,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에서 웹 2.0의 특징 중에 "자동화"를 강조했었다. 맞는 말이다. 쓰레기로 가득찬 곳에서는 쓰레기 처리를 자동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의미있고 서로 관계가 있는 데이터로 가득찬 곳에서는 기계에 의한 자동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근원적으로 웹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통제되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 기반의 자동화를 구축하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 그것들을 보완해주는 중간 단계의 기술들이 현재 나와 있는 웹 2.0의 기술과 서비스 아이디어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복잡해질지도 모르는 웹에 "자동화"를 구현하려면 김중태 원장이 말했듯이 인공지능의 기술, 특히 신경망처럼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들을 입력받고 학습하며 진화하는 시스템이 더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글처럼 매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공간/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기술 서적이 아니다. 웹 2.0도 기술 용어가 아니다. 그래서 기술을 다루지 않는, 또는 웹을 다루지 않는 사람들도 웹 2.0이나 이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웹 2.0의 시대에 강조되어온 "관계"와 "소셜(social)", "데이터", 어텐션(attention)" 그리고 "참여"와 "공유"라는 개념은 조직 내의 의사 소통 과정, 의사 결정 과정, 전략 수립, 지식 경영, 교육과 훈련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구성원들의 업무, 성향, 국적, 역량 수준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조직들이 웹 2.0 또는 엔터프라이즈 2.0을 조직 내에 어떻게 적용하여,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해진다.

2007-03-20

'ㅔ' 발음과 'ㅣ' 발음

우리 나라 말에서 급격하게 차이가 희미해지고 있는 발음이 'ㅐ'와 'ㅔ'이다. 사실 'ㅐ'와 'ㅔ'를 틀리게 발음하는 것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 그것을 듣고 구별하는 것도 매우 어렵고, 또 정확하게 발음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성 언어로 구분이 안 되니 문자로 기록할 때에도 'ㅐ'와 'ㅔ'를 바꿔서 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오늘 느낀 것은 재미있게도 영어의 '엑스' 발음이나 '에' 발음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익스'나 '이' 발음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represent'라는 영어 단어는 '레프리젠트'로 발음해야 하고 'representation'도 '레프리젠테이션'으로 발음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프리젠테이션'으로 발음한다. 거꾸로 'ㅣ'를 써야 하는데 'ㅔ'를 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리포트'를 '레포트'라고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듣기에 별 거북함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말하는 맥락에서는 충분히 한국화된 발음을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database'라는 영어 단어를 한국어 맥락에서도 '데이러베이스'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나 어색하게 들렸던가. 그런 맥락에서는 그냥 '데이타베이스'라고 하는 것이 훨씬 듣기가 좋다. 재미있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라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말하는 상황에서도 'excel'을 '익셀'이라고 하지 않고 '엑셀'이라고 잘못 발음한다는 것이다.

요즘 뼈저리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발음은 영어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덜 중요하다는 것. 즉, 억양(액센트)에 너무 목매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경우 한국 사람은 한국식, 이탈리아 사람은 이탈리아식, 중국 사람은 중국식, 필리핀 사람은 필리핀식, 인도네시아 사람은 인도네시아식 억양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들에게 미국식 또는 영국식 억양을 쓰지 않는다고 영어를 못한다고 할 수는 절대 없다. 그러나 정확한 강세(stress)와 모음 발음은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빠른 말을 들을 때에는 종종 강세와 모음만 대충 들어도 의미 파악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냥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근거는 없다. 어떤 언어 심리학자가 이런 것들을 검증하기 위해 매우 복잡한 실험을 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음 단어들에 나온 'e' 모음이 'ㅔ'인지 'ㅣ'인지 한 번 확인해보자.


  • represent (레프리젠트)

  • representation (레프리젠테이션)

  • report (리포트)

  • execute (엑시큐트)

  • executable (엑시큐터블)

  • excel (익셀)

  • excellence (엑설런스)

  • expert (엑스퍼트)

  • reference (레퍼런스)

  • refer (리퍼)

  • resume (리쥼)

  • export (익스포트)

  • explanation (엑스플러네이션)

  • explain (익스플레인)

  • designate (데지그네이트)

  • prefer (프리퍼)

  • preference (프레퍼런스)

2007-03-10

"공유하기 싫은 사람은 인터넷을 떠나라"에 대한 답글

커서님의 글에 부분적으로 공감합니다만 약간 다른 관점에서 "공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인터넷은 잘 모르겠고, 웹의 시작은 서로 다른, 멀리 떨어진 기종간의 자료를 자유롭게 교환하기 위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의 상당 부분은 "하이퍼링크"라는 아주 간단하지만 대단한 기술을 통해 구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모든 글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사람들은 어디에서 출발하더라도 관련된 지식과 정보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터넷의 문화는 참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없겠지만, 남이 써놓은 글을 "스크랩"하기 또는 "담기", "퍼가기"와 같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자신의 공간에 담아두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 홈피가 풍부해지면 결국 방문자들에게 이득을 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단편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퍼가기와 스크랩을 통해 복사된 글들이 인터넷에 많아지면, 인터넷의 꽃인 검색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좋은 검색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 자료가 얼마나 검색 목적에 적합한지 기계가 판단을 해야 합니다. 이 때의 판단 기준으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봤는가, 글 내용과 제목, 키워드 등이 얼마나 적합한가, 그 글을 참조하고 있는 링크가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추천을 받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북마크를 했는가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 나라에서 최고의 검색 포털인 네이버에서 무엇을 검색해보면 똑같은 내용의 글들이 블로그, 카페, 지식인 등에 몇 번씩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고, 도대체 그 "지식", "글"을 쓴 원 저작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반복해서 나타나면 노출의 기회가 많아져서 접근성이 높아진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반복해서 나타나지 않고, 원본 글이 가장 적합한 글이었다면, 그 글은 검색 엔진에 의해 가중치가 점점 더 높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복사본이 많아지니까 원본 글의 가중치는 실제 그 글이 가지는 중요도, 적합성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뭐가 중요하고, 뭐가 적합한지를 기계적으로, 또는 사람이 판단할 기준이 애매해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결국 인터넷 검색의 품질을 극적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나라의 웹 검색 수준이 구글과 야후같은 세계적인 기업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초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퍼가기와 같은 기형적인 웹 데이터들에 의해 웹이 쓰레기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포털들은 웹 검색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입니다. 단지 포털 내부에 갇힌 자료들만 잘 보여주면 되었지요. 인터넷의 세계는 국경을 넘어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인데도 우리 나라는 정확하지도 않은, 그리고 온통 퍼가기로 여기 저기 반복되는 "네이버" 지식인 수준의 공유 "지식"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을 넘어 세계 사람들은 "공유된" "공공의 지적 자산"을 키워가며 자신들의 지적인 창작물들을 키우는 동안 우리는 갇힌 우리들만의 좁은 세계에서 서로 퍼가고, 나르고, 복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다른 나라의 개개인들이 기존의 가치에 자신만의 부가 가치를 더해서 지식을 키워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새로운 가치도 창출하지 못하는 복사하기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를 발견했다면 퍼가지 말고, 링크를 걸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외부에서 링크가 많이 걸린 정보는 중요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걸린 "링크의 텍스트 제목"을 통해, 원본 자료의 내용을 대표하는 제목이 무엇인지, 어떤 자료가 담겨 있는지를 기계적으로 결정하기가 더 좋아집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검색 엔진을 통해 찾든, 아니면 링크를 따라가면서 찾든, 나의 목적에 더 쉽고 빠르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많은 자원들이 이렇게 해서 "공공성"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베껴서 널리 퍼뜨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든 저작물을 링크로 인용하여 다른 사람이 연관된 새로운 저작물을 만들면서 우리의 공공 자산은 점점 더 커지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조선닷컴" 사이트에 "퍼가기"라는 주황색 버튼이 생겼더군요. 아니 신문사에서, 그것도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 신문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기사를 퍼가도록 할리가 있나 싶어서 눌러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RSS" 구독 버튼이었습니다. RSS 구독은 퍼가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 어떻게 이것을 "퍼가기"라고 표현했을까 생각해보니, 우리 나라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퍼가기"라는 말이 원 저작자의 글의 인기도를 높이는 긍정적인 단어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마 뜻을 왜곡하면서도 그런 명칭을 붙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퍼가기는 결코 원 저작자의 인기도를 높여주지도 않고, 퍼가기로 복사된 글들이 많아지면서 그 내용의 중요도가 높아지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로 인터넷 세상의 엔트로피가 증가할 뿐입니다.


건전한 "링크"를 원천적으로 막고, 이상한 "공유" 개념에 기반해서 "퍼가기"를 조장하는 우리 나라의 포털, 블로그, 언론 매체, 심지어 정부 기관의 잘못된 관행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원본 글에 대한 정확한 링크, 즉 딥 링크(deep link)를 막는 인터넷 주소(URI) 감추기입니다. 비교적 진보적인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만 봐도, 어떤 기사를 들어가도 주소창에는 항상 똑같은 "http://www.pressian.com" 주소만 나옵니다. 프레임을 사용하여 주소를 감춰버린 것이지요. 가장 공공성이 강한 정부나 공공 기관의 웹 사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정보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는 한국 정보 문화 진흥원이나, 우리 나라 소프트웨어와 디지털 콘텐츠 기술의 발전 정책을 집행하는 한국 소프트웨어 진흥원도 그런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주소가 나타나질 않으니, 기본적으로 해당 페이지에 링크를 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필요하면 그냥 복사하든가 아니면 말든가 하라는 것이지요. 주소 감추기는 또 다른 폐해도 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과 같이 비시각적으로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문서의 제목과 주소가 매우 중요한 이해의 단서가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 주소 감추기를 통해 그 사이트 안에 담긴 수없이 다른 문서가 똑같은 제목과 똑같은 주소만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문서들을 변별할 수 있는 문서의 "독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나마 문서 안에서의 "제목"과 내용이라도 충실하게 HTML 규격에 맞추어 작성했으면 불행중 다행인데 우리 나라 웹 페이지들은 "제목"을 표준에 맞추어 표현한 경우도 매우 드뭅니다. 그냥 글자만 굵고 크게 하면 제목인 것은 아닙니다.


둘째는, "스크랩", "퍼가기", "블로그에 담기", "클리핑", "나르기", "담아가기", 콜백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하는 "복사하기" 기능입니다. 아예 공개적으로 복사를 권장하지만, 인터넷 주소는 안 보이게 함으로써, "링크"는 불허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복사로 얼룩진 대표적인 사이트가 아마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지식인, 다음 카페이겠지요. 그 "복사"라는 것도 자신들의 포털 안에서는 무제한 허용하면서, 포털 밖의 인터넷 세상으로는 무제한 금지하려고 별 짓을 다하고 있지요. 그것중에 대표적인 예가 "마우스 오른쪽 버튼 막기"와 같은 별 효용도 없는 기능을 쓰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그네들의" 포털에서는 복사된 쓰레기만 넘쳐나니, 그 쓰레기를 다른 인터넷 세상으로 무단 투하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열린 공간인 인터넷에 있는 귀중한 정보는 다시 그들만의 닫힌 세상인 포털 안으로 복사해다 부지런히 나르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세째는, 포털에 일반 사용자들이 올려놓은 자료가 열린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하도록 "robots.txt"를 이용해 검색을 막아놓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공개된 인터넷이라고 생각해서 다음 카페, 네이버 지식인에 올려놓은 자료들은 다음 안에서 또는, 네이버 안에서만 검색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21세기 인터넷 세상에서 20세기 PC통신 방식을 고집하겠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검색 엔진들이 검색을 못하도록 철저히 자신들의 포털 안에 사용자들을 가둬놓은 것이지요. 그것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엠파스의 소위 "열린 검색"입니다. 그러나 엠파스의 접근 방식도 잘못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네이버, 다음에서 검색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된 표준에 따라 장치해놓은 검색 거부 선언을 엠파스는 의도적으로 무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거 누구 편을 들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진흙탕 다툼 같지 않습니까?


네째는, 더 엽기적인 것입니다. 네이버에서는 설사 엠파스 같은 곳에서 자신의 지식인 자료를 검색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쓸모없도록 무력화시키기 위해, 며칠 지나면 지식인에 올라온 자료의 인터넷 주소가 자동으로 바뀌도록 해놓았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악행을 막기 위해 자신은 더 큰 악행을 저지르는 행위이지요. 다시 말해,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자료를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 내가 오늘 즐겨찾기(또는 북마크)에 등록했다고 해도, 내일이면 쓸모없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용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일이면 없어질 페이지에 링크를 걸 수도 없고, 결국에는 그냥 복사해다가 내 홈페이지에 붙이고, 게시판에 붙이고, 열심히 "퍼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계 7위를 차지하는 한국어 인터넷 사용자들이 공공 재산의 하나인 "위키피디아"에 등록한 한국어 문서 등록률은 세계 30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미 서구 문화권에서 상당히 널리 퍼지고 있고, 혁명적이라 할만한 콘텐츠의 유통 방법인 RSS가 아직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아마 "퍼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개인 블로그는 물론이고, 기업, 대학, 정부, 공공 기관 할 것 없이 RSS를 통해 자신들의 소식을 사용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빨리 우리 나라 웹 사이트들도 퍼가기를 조장하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공공재로서의 인터넷 사용을 더 편하게 만드는 작업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인터넷 사용자들 스스로도 "퍼가지 않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 사이트에 있는 글을 사람들이 "퍼가기"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 싫습니다.

2007-03-03

오라클이 접근성 때문에 고소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준호님 블로그에서 글로벌 기업인 오라클이 접근성 위배로 고소당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기사 원본이 어디 나와있을까 한참 찾다보니 현준호님 글 맨 끝에 Oracle sued for failing blind users라는 기사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도 오라클에서 만든 교육 관리 시스템(Learning Management System, LMS)을 비롯해 인적 자원 관리를 온통 오라클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갔습니다. 처음에 오라클 소프트웨어(데이터베이스가 아닌 주로 ERP 류의 소프트웨어)를 접해본 느낌은 아주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사용자 인터페이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배경이 강한 사람들은 오라클을 쓰면서 점점 감탄하게 됩니다. 그 복잡한 세상을 이렇게 일관성있게 관리할 수 있도록 구축해놓은 것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대체 이걸 누가 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가 다시 묻게 합니다. 일반적인 우리 나라의 학습 관리 시스템이라면 현황 자료를 뽑을 때에 그냥 버튼 하나 누르면 간편하게 엑셀로 다운받아 줍니다. 그런데 오라클에서는 그런 현황 자료 하나 뽑을려면, 일일이 SQL 만들어서 돌리고, 다시 템플릿을 XML이나 XSLT로 만들어서 리포트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정말 불편하고 느린 인터페이스로 되어 있지요. 다시 말해, 사용자가 SQL, XML 따위를 모르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사 SQL을 안다고 해도 그 거대한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 구조를 기술적으로 파악하고, 또 운영을 해봐야 이게 실제 어떻게 연관된 것인지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에 현업에서 SQL 만들어서 실제로 써먹으려면 하세월이 걸립니다. 그래도 저는 그런 오라클의 방법이 그냥 단순하게 엑셀 파일에 서식까지 잔뜩 입혀서 다운로드받게 해주는 국산 프로그램들보다 어떤 면에서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엑셀 형식은 적어도 보편적인 형식이 아닌 특정한 업체의(proprietary)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나라 업체의 제품 같으면 웹에서 트리 구조를 표현하기 위해 이상한 액티브 엑스(Active X) 깔아서 클라이언트에서 트리를 펼쳤다 닫았다 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매우 많지요. 모두가 윈도우즈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쓰고, 자기 컴퓨터에 그런 프로그램 수십 수백 개 깔리는 것 신경 안쓰는 사람들은 그게 훨씬 편한 방법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라클은 정말 느리고 불편하게 서버에서 트리를 완전히 다시 갱신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 같으면 아마 에이잭스(AJAX)를 써서 훨씬 빠르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불편한 서버 갱신 방식을 채택한 것도 어찌 보면 이유가 있었습니다. 트리를 펼치는 것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트리의 특정 노드로 점프하는 것 등이 모두 키보드로 작동 가능하고, 시각 장애인이 쓸 수 있게 해놓았더군요.

국내 학습 관리 시스템 같으면, 특정 과정을 개설할 때 강사를 지정하는 것 정도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만 오라클 시스템에서 그것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일에 속합니다. 시스템을 아무리 뒤져봐도 강사(instructor)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한 번 하려면 오라클 권한 부여 모형(Oracle permission model)과 역할(role), 권한(privilege)을 이해해야 하고, 또 사이트(site), 자원(resource), 자원 유형(resource type)이라는 개념과 자원 예약(booking), 확인(confirmation) 개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한 방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강사 지정한다고 해서 강사 권한이 바로 부여되는 것도 아니구요.


아무튼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쓰면서 한편으로는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구조에 감탄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전혀 무신경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불만을 갖게 됩니다. 오라클의 웹 소프트웨어의 사용성은 제가 써본 바로는 별로입니다. 엔지니어들에게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지만 기술과는 거리가 먼 업무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꽝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웹 인터페이스는 그나마 낫습니다. 재활법 508조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대체 텍스트, 키보드 접근성 등을 대부분 지켜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웹 표준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웹에 있어서는 아주 구닥다리 코드들을 사용하고 있지요. 그런데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과연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머릿속에 담아서 직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상당히 무리이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나라에서 만든 웹처럼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아예 화면이 안 뜨고, 화면 레이아웃이 깨지고, 작동도 안 하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고소를 당한 소프트웨어는 아마 자바 애플릿 기반의 소프트웨어쪽이 대상이 된 것 같습니다. 오라클이 만든 자바 애플리케이션을 써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처음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그리고 자바 애플리케이션들은 접근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자바의 접근성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닙니다. 100% 자바로만 만든 넷지(NETg)의 이러닝(e-learning) 콘텐츠나 스킬소프트의 온라인 콘텐츠는 접근성이 아주 좋습니다. 우리 나라 이러닝 콘텐츠들의 경우는 기본적인 웹 표준과 웹 접근성, 상호 운용성, 최소한의 사용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고 오로지 서로 다른 학습 시스템간의 상호 운용성을 보장해준다는 스콤(SCORM)에만 신경을 쓰고 있지요. 기본적인 데이터로서 가치가 낮고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콘텐츠를 아무리 스콤 표준에 맞추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라클은 아주 거대한 회사입니다. 그래서 제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움직임도 상당히 느리더군요. 그리고 워낙 제품군이 많고 방대하기 때문에 고액 연봉을 받는 오라클의 전문 컨설턴트들도 자기가 전문성을 가진 특정 분야 제품이 아니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재활법 508조 때문에 오라클은 형식적으로만 접근성을 지켜왔던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나마 자바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에는 신경을 덜 써왔던 것이고. 이제 그런 형식적인 접근성을 지켰다고 해도, 실제 장애인 사용자의 "원활한"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드러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장애인 사용자가 인사 정보를 열람하기 위해 항상 비장애인 사용자의 도움을 받아야 해서, 자신의 개인 정보를 남에게 다 노출할 수 밖에 없는 심각한 문제를 참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접근성을 지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리고 단순해보이는) 접근성 규칙들 이면에 숨어있는 사용자 편의성(usability)이라는 측면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사용자 편의성, 접근성 문제에 상대적으로 둔감함을 보여왔던 오라클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7-02-26

7th KWAG Workshop

I attended the 7th KWAG workshop held at one of NHN's training centers. KWAG is a voluntarily gathered non-profit, and non-government group of people who share the interest in enhancing Web accessibility in Korea, and this workshop is a kind-of unconference which has no fixed form but the content of the meeting is freely created by voluntary individuals.

KWAG launched several small groups, that is TF's at this 7th workshop. I was involved in Web Accessibility Evaluation TF and newly participated in Caption and Audio Description TF which consists of only three members (Gyu-yeon Hwang, Jiae Mun and me) now. We had a short discussion regarding the plan for this TF and picked out three initiating topics:


  1. Accessibility of multimedia players (whether they are embedded in a Web or run as an independent application)

  2. Field research for captioning applications

  3. Effective caption(or subtitle) design

Have a quick look at the following photos to get how the workshop worked:


2007-02-22

단일 문화 사회를 넘어

중고교 시절에 강조해서 듣던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 백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민족이라는 단어는 항상 핏줄의 계보를 따진다. 그리고 그 핏줄, 또는 혈통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핏줄에 대한 묘한 집착, 또 빠져나오기 힘든 편견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잘 이용해먹었던 자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무솔리니같은 사람들이다. 우리 나라는 긴 세월동안 다른 나라를 부당하게 침략하지 않고 평화를 옹호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이 있다. (최근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침략 전쟁을 일으킨 미국에 협조해 군대를 파견한 불명예스러운 역사도 있지만.) 거기에 어물쩡하게 덧붙여 우리 나라가 단일 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왔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인지 점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얼마 전에 여수에 있는 외국인 보호 시설에서 화재가 나 외국인들에 대한 부당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 사회적인 각성의 계기가 있었다. 박노자 칼럼 (이민 받아들이기를 왜 거부하는가?)에서 지적했듯이 이제 다양한 종족이 함께 공존하는 "정상적인 나라"의 대열로 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사는 것이 우리 나라에 여러 가지로 이득이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블로거 젠 카나이가 지적한 THE COST OF MONOCULTURE는 힘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다수의 문화가 그냥 우리 사회의 단일한 문화로 둔갑해버리는 우울한 현실의 일부분일 뿐이다. 단일한 종으로 구성된 식물 군락은 특정한 바이러스나 병충해에 한 번 취약점이 노출되면 전체가 무너진다. 우리도 2003년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단일한 IT 환경으로 인해 인터넷 대란을 겪은 적이 있다. 이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그렇게 비난하는 유일 사상 체제인 북한보다 확실하게 우월한 점이 아닐까.

네덜란드 법인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 물류 창고 직원 26명의 국적을 조사해보았더니 18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던 직원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