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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5

내 청춘에게 고함, 김영남 감독

내 청춘에게 고함 영화에 나오는 세 주인공

일요일이 종영일인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오산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낙원상가 내에 있는 조그마한 극장으로 갔다. 내가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초등학교 때 아주 친했던 영남이였기 때문이다. 영남이로부터 마지막 날이니 한 번 보러 오라는 전화 연락을 받고,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의 기억 속에 영남이는 전형적인 모범생에 순진남이었다. 대학도 대학원도 모두 전산학 쪽으로 택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대학원을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영남이의 이미지와 영화를 만드는 영남이가 잘 결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나는 날아가고…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로 깐 영화제에서 주목받더니 이번에는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영화로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두 개 부문 수상을 했다.

일요일 영화가 시작되기 전과 영화가 끝난 후 영남이를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처음 감독이 되었을 때에 만나서 사당에서 방배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초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영남이는 변함없이 짧고 단정한 머리의 수줍은 모범생 이미지였다. 나는 영화 감독이면 뭔가 튀어보일 줄 알았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변하지 않아 보였다.

그의 영화 속에서 때론 혼란스럽고, 그러면서도 웬지 풋풋하고 동정심이 가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아직도 청춘의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거울속에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영화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어쨌든 좋은 영화였다. 대형 상업 영화가 아닌 이런 아기자기한 작은 영화를 보며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내 자신이 행복했다. 마치 휴대용 캠코더를 몰래 들이내민 듯한 자연스러운 영상 속에서도 적절한 영화적인 극적 전개와 절제된 언어는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더구나 그것을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잘 아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니...

First KWAG(?) Meeting

People at the First KWAG Meeting

People who have much interest in web accssiblity got together on Saturday, September 2, 2006 at TOZ, Gangnam, Seoul, Korea. Hooney, one of the participants proposed a name of this group: KWAG, Korea Web Accessibility Group. We will share and study together in the following fields (as far as I remember): history of web, the benefits of web standards, the components of web standards, multimedia accessibility, SMIL, multi-modality, usability, workflow, Flash accessibility, browser interoperability, coding techniques, authoring tools, e-learning accessibility, accessibility guidelines, assistive technologies, screen readers, plug-in problems, etc. We will have our second meeting on September 16.

2006-08-27

당신은 모르실거야

오랜만에 미디 음악을 하나 만들어보았다. 나는 몇 달 동안 특정한 멜로디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요즈음에는 바로 이 노래가 계속 떠오른다. 욕심 같아선 그 멜로디에 여러 개의 변주를 만들고 싶지만, 그러려면 나로서는 몇 달, 또는 몇 년이 소요될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간단하게 6시간만에 뚝딱 만들었다. 처음에는 멜로디와 스트링 화음만 나오고, 두 번째에는 피아노, 피치카토 스트링, 드럼, 보조 멜로디가 나온다. 혜은이가 노래했고 핑클이 리메이크한 것도 있는데, 이번에는 원곡은 전혀 들어보지 않고 순전히 내 마음대로 편집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월이 흘러가면은 그때서 뉘우칠거야

마음이 서글플 때나 초라해 보일 때에는
이름을 불러 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께요

두 눈에 넘쳐 흐르는 뜨거운 나의 눈물로
당신의 아픈 마음을 깨끗이 씻어 드릴께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모했는지
뒤돌아 보아 주세요 당신의 사랑은 나요

2006-08-23

웹 2.0 시대의 웹 접근성 평가 이벤트 (부산 광역시)

부산광역시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는군요. 시 홈페이지의 웹 접근성 오류를 많이 지적해준 사람에게 상품을 준다고 합니다. 이벤트 페이지부터 좀 고쳐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왜 이런 행사를 이왕이면 공개적인 게시판에서 열띤 토론이 되도록 하지 않고, 얌체같이 폼 메일로 보내도록 했는지 심히 아쉽습니다만... 어쨌든 이런 이벤트를 통해 따가울 것으로 예상되는 사용자들의 지적을 받겠다는 취지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메인 페이지에는 아직 이벤트 소식이 걸려있지 않네요.

부산 광역시의 웹 접근성 평가 이벤트

2006-08-22

김용옥의 강좌에서 건진 두 가지

별 생각 없이 교육방송을 틀어보았다. 김용옥 선생의 논술 강의가 있었다. 특유의 입담으로 텔레비젼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끝날 때까지 보게 되었는데, 두 가지 배운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우리가 외래어를 쓸 때에 한글과 외국 문자를 그냥 섞어서 쓰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Beethoven의 교향곡'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베토벤의 교향곡' 또는 '베토벤(Beethoven)의 교향곡'이라고 써야 한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보고서 쓸 때 내가 정말 싫어하는 단어가 '추진(案)'이라고 쓰거나 '감독下에 진행中에 있음.' 과 같이 불필요하게 한자를 한글과 섞어서 표기하는 것이다. 한자어 대신에 우리말 단어를 찾아 쓰자는 것이 아니라 한자어를 표기할 때에 굳이 한글에 한자어를 섞어쓰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대표적인 마크업 언어인 에이치티엠엘(HTML)에도 언어가 바뀌면 반드시 언어를 표시하도록 되어있다. 예를 들면,

<p lang="ko">
<span lang="en">remote control</span>을 줄여서
영어에서는 <span lang="en">remote</span>라고 하지만
리모컨이라고 줄여 쓰는 경우는 없다.</p>

이와 같이 언어 독해의 모드(mode)가 바뀌면 원칙적으로 한 단어이든, 문장이든, 단락이든, 아니면 통째로 파일 전체이든 해당 언어를 표시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나 검색 엔진과 같은 기계가 문서를 정확히 분류하고 해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한국어와 영어는 완전히 문자가 달라서 보통 국내의 스크린 리더에서 알파벳으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읽지 못하는 경우는 없지만, 표기 문자가 많이 겹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섞어 쓰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한자를 썼을 때에도 그것이 한국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일본어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중국어식으로 발음해야 하는지 컴퓨터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은 되도록이면 한글로 글을 쓸 때에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글이 아닌 다른 문자(한자나 영어)를 섞어서 쓰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보기 싫기도 하고, 한자나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글을 읽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도 글을 쓸 때에 다른 문자 표기를 섞어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원칙을 배웠다.

또 하나는 되도록 순 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순화주의자들의 주장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언어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순 우리말이라는 것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널리 쓰이는 한자어가 있는데 억지로 말이 안 되는 우리말 단어를 만들어 쓰는 것에 대해서도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예로 든 것이, 먹거리라는 단어였다. 원래 우리 말 어법대로 하면 동사가 명사를 꾸미려면 관형어 형태로 먹을 거리가 되어야 하는데 어법에도 맞지 않게 먹거리라는 단어를 억지로 만들어 이것이 음식이라는 한자어보다 더 좋은 우리말인 것으로 퍼뜨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씩 새로운 우리말 단어를 알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반해 꼭 쓰고싶어지다가도 실제 더 많이 쓰이는 한자어나 외래어가 일상화되어서 사실 생활에서 활용을 못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제 그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겠다.

2006-08-15

영어 듣기와 주의 집중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EBS 라디오를 틀어놓고 귀가 트이는 영어, 조오제의 토익 리스닝, 이보영의 포켓 잉글리시 등을 듣는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것들은 모두 면도하면서, 샤워하면서, 옷 입으면서 흘려듣는 것들이므로 사실 건지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 많은 영어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말들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데 영어는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복이 중요하다고 해서 주말에 재방송을 들어봐도 (그 때에도 딴 짓하면서 건성으로 듣는 편이라) 역시 한국말 해설은 두 번 반복하니 완전히 외우겠는데 외국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오늘 해외에서 온 교육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였다. 식사하는 도중에 CNN 뉴스가 나왔다. 나는 아주 주의집중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밥먹던 것을 잊고 들으면 겨우 몇 퍼센트 건질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한 눈으로 힐끗힐끗 보고, 밥도 맛있게 먹으면서, 때로는 나와 잡담도 하면서 뉴스를 본 것 같던데 뉴스에서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예전에 회사에서 그 회사 사장님이 영어에 한이 맺힌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이도 아주 많지만 아직도 영어 테이프를 잠잘 때에 틀어놓고 잔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뭔가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듣는 영어, 밤에 잠잘 때 틀어놓는 영어, 낮에 길거리에서 딴생각 잔뜩 하면서 듣는 영어,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영어에 질리게 만들도록 항상 틀어놓는 영어 TV 방송, 이런 것들이 영어 듣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아침에 나오는 토익 방송 중에 간혹가다 문제는 건성으로 듣다가 답은 또렷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답은 알쏭달쏭한데 알고 보면 정말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왜 들리지 않았을까? 그것은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주의 집중해서 영어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1언어에 비해 외국어를 이해하려면 훨씬 많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서 듣는 영어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특히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가 훨씬 지난 성인들에게 말이다. 심리학적으로 실험해봐야 할 재미있는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의 효과가 없거나 또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아직 주의를 주지 않고 자동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먼 외국어 듣기 영역에서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듣기 시작하면, 외국어는 일반 잡음, 배경 소리로 처리하는 기제가 점점 발달하지는 않을까?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대화를 하려면 (그것은 생존에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주의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운전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말을 시키거나 라디오를 틀어놓기만 해도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며, 온 힘을 운전대에 집중해 꽉 쥐다보면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나중에 손바닥이 얼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의를 다 쏟아서 한 가지 과제를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는 점점 더 적은 주의를 쏟더라도 자동화되어 그 과제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영어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주의를 쏟지 않고 그냥 틀어놓으면 잘 들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너무 순진한 희망 사항이 아닐까?

그래도 설마 부정적인 효과가 있겠어? 1%라도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내일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2006-08-14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저자 존 코터. 번역 한정곤. 출판사 김영사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존 코터 지음.

나는 어쩌면 회사원이 체질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수도 없이 의심해왔다. 특히나 학교 졸업하고 처음 회사 들어갈 때의 그 두려움과 낯설음, 그리고 부적응적 태도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내가 회사 생활을 한 지도 참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기업 경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이나 리더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별 근거없이 잘 꾸며진 틀에 자기 주장을 맞추어 늘어놓는 것들이어서 그런 책들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이라는 책을 보게 된 이유는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아직까지 조직 경험이 한참 부족한 내가 변화 관리를 강의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 되는 영어로. 만약 그 내용이 e-learning에 관한 것이거나, 웹 접근성에 관한 것이거나, 우리 회사의 이러닝 시스템 사용법에 관한 것이라면 일주일을 하든 이주일을 하든 별 상관 없는데, 변화 관리라는 영역은 완전히 초짜중에 초짜인데 갑자기 영어로 8시간을 떠들어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교육도 받고, 다시 영어로 된 e-learning 과정도 들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다시 한국어로 된 책을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참 쉽고 예제가 많이 있어서 쉽게 쉽게 넘어갔다.

물론 이 책을 읽고 경영 서적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기업에서 생겨난 혁신이라는 말이 요즈음은 공기관과 정부에서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모두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어제의 영광이 오늘, 내일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이건, 조직이건 빠르게 움직이는 열차 위에서 쉬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은 커녕 현상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회사에 들어와서 공부 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고 또 배우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또 하나, 어떤 일이든 단숨에 우연하게 운좋게 되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냥" 혼자 "샤샤삭" 해버리면 되지, 뭘 그리 복잡하게 사람들 만나서 의견 물어보고, 워크샵하고, 설문 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만나서 간담회도 하고, 또 아주 복잡한 변화 관리 계획을 세울까라고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새로운 정책이나 변화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매우 환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회의적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방관할 수도 있고, 주도적일 수도 있고, 끌려다닐 수도 있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수도 있고, 위험을 피하려 할 수도 있고, 바빠서 관심을 못 갖을 수도 있고,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교하고 단계적인 변화를 계획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책에 있는 변화 관리 8단계가 저자의 주장인지 아니면 그 전에 다른 문헌에서 주장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가 다 결코 쉽게 보고 지나쳐서는 안 될 소중한 단계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흔히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기업이 원하는 혁신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인생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우리들이 부닥치는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차근차근 관계된 사람을 참여시키면서, 또는 관계된 자원을 모아가며 목표를 향해 성실하고 집요하게 단계를 밟아가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