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러빙 빈센트를 보고

동서고금, 음악과 미술 등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것이다. 그를 처음 접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30권인가 50권짜리 명화집을 통해서였다. 화가별로 정리된 명화집에서는 고전적인 앵그르, 다비드에서부터 낭만파의 거장 들라크루아 (그 책의 표기로는 드라크라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수 많은 인상파 화가들, 마네, 모네, 드가, 세잔, 고갱, 쇠라, 그리고 어린 시절 꼬마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고흐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해설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고, 맨 마지막은 뭉크 등을 거쳐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다른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막연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많은 화가 중의 한 명이었던 고흐가 나의 가슴 속에 들어온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한 번은 2주 동안 네덜란드로 출장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 가보았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그 때까지 렘브란트, 몬드리안과 함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인 것도 몰랐었다. 내 기억에 그 미술관에 고흐의 작품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흐라는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첫 번째 계기였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그를 더 강렬하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고흐는 평생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깊이 고뇌하는, 그리고 자연과 인간, 노동에 대해 진실한 존경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로서 그는 그림을 통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그의 그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하고, 라이브하고,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그림에서 충분히 보지 못했던 그의 생각, 삶에 대한 태도, 조금 더 깊은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이후 그에 대한 노래, 돈 맥클린(Don McLean)의 빈센트는 가장 좋아하는 팝송 이 되었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배경으로 한 우산을 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경과 팬심(?)의 표현이었다.
어제 그에 대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았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세 편의 영화가 있는데, 뭘 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나는 이 영화를 보자고 했는데, 막연히 고흐에 관한 영화겠거니 하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서 보게 되었다. 영화 시작할 때 나왔다. 100여 명의 화가들이 참여해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흐의 화풍을 재현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초당 12 프레임의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책 속에서, 작품집에서 정지되어 있던 고흐의 그림들이 꿈틀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속의 인물들이 고개를 돌리고, 웅크리고 앉았던 사람이 일어서며, 들판을 달리던 기차가 실제 연기를 뿜어내고 경적을 울렸으며, 그림 속의 등불이 아른거리고, 밤하늘의 별이 휘둥그렇게 빛을 내뿜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슴이 뛰었다. 특히, 가셰 박사와 아르망의 대화 장면은 마치 고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만큼, 라이브한 인물과 배경이 아름다웠다.
고흐 인생의 마지막 거처인 프랑스의 오베르 쉬즈 우아즈에서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절대적으로 침착한(absolutely calm) 상태였다고 고백했던 고흐가 6개월만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추적하는 형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영화를 통해,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100명의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서 프랑스 시골 마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렇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과 배경, 그리고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영화 보는 내내 무겁게, 안타깝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빈센트(Starry, starry night으로 더 알려진 노래) 음악이 나왔을 때에는 마치 나의 가까운 지인을 방금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은 슬픔이 밀려왔다.
고흐의 편지집에는 밑줄 쳐가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가 실제로 부치지 못한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우리는 그가 생명을 건 작품들을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Thank you, Vincent!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도메인을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사용해오던 gregshin.pe.kr 도메인이 만료되고, 잠시 재등록을 하지 않은 사이에 누군가 도메인을 가로채버렸다. gregshin.pe.kr 도메인을 검색해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도메인이름 : gregshin.pe.kr
등록인 : 정한
책임자 : 정한
책임자 전자우편 : rmdrk@hanmail.net
등록일 : 2016. 12. 05.
최근 정보 변경일 : 2016. 12. 05.
사용 종료일 : 2017. 12. 05.
정보공개여부 : N
등록대행자 : 메가존(주)(http://HOSTING.KR)
DNSSEC : 미서명

괘씸하게도 내가 예전에 사용하던 무지개 모양의 파비콘을 유지한 채로 실제 사이트는 오픈하지도 않았다. 즉, 도메인 장사를 하려고 선점한 것이다. pe.kr은 개인용 국내 도메인으로 가격도 싸고 가장 인기 없는 도메인이다. 내 홈페이지와 블로그는 최근에 거의 활동이 없었지만, 과거에 축적된 데이터는 꽤 많기 때문에 외부에서 참조하여 들어오는 링크는 상당히 많다. 그래서 함부로 도메인을 포기하는 것은, 인터넷(웹)과 나 자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 꺼려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도메인 장사꾼에게 웃돈을 주고 도메인을 사오고 싶지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기존 도메인을 포기하고, 호스팅 업체에서 제공하는 sshin.cafe24.com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롭게 gregshin.kr 도메인을 새로 구입했다.

문제는 과거에 내가 스스로 내 홈페이지 내부에서, 또는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링크드인 등)에서 과거 도메인으로 참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고, 대부분 수정도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사이트에서 아직도 내 과거 홈페이지 도메인을 참조하고 있는 링크가 꽤 많은데 이것은 내가 직접 고칠 수가 없다. 작은 일이지만 잠깐 소흘히 한 결과의 댓가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내가 직접 고칠 수 있는 것(내부에서 링크를 하고 있는 것)들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기로 했다. 우선 절대 참조로 되어 있는 링크는 되도록이면 상대 참조 링크로 바꾸고 있는데, 이미지, 파일과 특정 블로그 포스트를 가리키는 링크 등 생각보다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린다. 또 하나하나 수정하는 과정 중에 외부로 나가는 링크도 깨져 있는 것이 다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gregshin.pe.kr에다가 보안 서버 인증서를 설치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gregshin.kr에 설치했다. https로 바꾸고 나니 할 일이 상당히 많았다. 워드프레스(WordPress)와 기존 엑스프레스엔진(XpressEngine)의 기본 URL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http로 들어왔을 때에 https로 리디렉션 하도록 .htaccess 파일을 수정해주는 것, 그리고 곳곳에 숨어있는 내부 링크, 이미지 등에 쓰인 과거 URL들을 바꿔주는 것 등등 끝이 없다. 검색 엔진들은 다른 사이트에서 참조하고 있는 링크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sshin.cafe24.com과 gregshin.pe.kr이 아직도 먼저 노출된다. 그러다 보니 sshin.cafe24.com 도메인에는 인증서가 없어서, 인증서 없이 들어오도록 놔두어야 했다. 아무튼 gregshin.pe.kr의 현재 소유 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옛날 주소로 고칠 생각인데, 그 때엔 또 얼마나 많은 작업을 해주어야 하는지…